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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게 보내는 편지(1982년 섣달) 본문

나의 詩, 수필

형에게 보내는 편지(1982년 섣달)

퀘런시아 2021. 6. 21. 17:28

  兄! 눈이 가늘고 치열이 고른 兄! 안녕하세요? 구구절절 인사말도 많았던 섣 달도 침묵을 지킨채 길게 누워가고 있군요. 찬 골목의 모퉁이 밤이 어둡고, 바람이 거세고. 그때가 한 겨울 이련가!  바바리 옷깃을 여미면서 그곳을 떠나올 때, 내리치는 눈발 속에서 이별이라는槪念을 아름답게만 물들여 놨었지요. 적어도 우리의 離別만은!

  간밤엔 왜 그런지 잠자리에서 일어나, 긴 밤, 모두가 잠자는 밤, 폭우가 눈이되어 내리는 하늘을 지켜 봤어. 폭설이었겠지. 수은등 저쪽은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계였고, 수은등 갓위에 수북이 쌓이고, 드디어는 내리치는 눈발에 불빛과 함께 포말이 되어서 무너지고, 무너지곤 하더군. 획을 그으며 포근하지만 떨어지는 눈은 싸늘한 감성의 소유자이고 대지를 뒤덥는다지만, 창가에 서 있는 부엉이 눈의 인간은 결코 덮을 수 없는 그 무엇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 진실이고 싶고 한편의 詩이고 싶고, 화폭의 동자이고 싶은 마음, 허황이 아닌 투박에서 몸을 눕히고 싶고, 거기에서 불살려지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날, 길 나지 않은 들길, 이름 모를 풀들에 얼굴을 긁혀 가며 뛰던 때와 신작로를 덮어가는 아스팔트 위에 누워서 무수한 언어들을 뱉었었지. 사춘기가 일찍 찾아와 부엉이 우는 밤으로는 모기 쫓는 밤이 길다고 하다가, 解土하면 길다란 고무줄에 매달려 쪼잘대는 계집애들을, 테라스가 따스한 교정에서 고개만 내밀고 눈으로만 점찍었던 시절, 적어도 이승의 모든 길은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며, 세상살이의 태반은 발걸음을 조심하는데 자신을 노예화 하는 피동적 존재라고 생각 할 즈음, 나는 사춘기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청년기에 알았죠.

  나는 우리의 시대는 모방의 모순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을 예약한다면, 자신의 지난 삶을 남에게 표본을 내세워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것을 논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피력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도태된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 속에서 얘기한다. 철저한 나만의 삶이 아닌 단 1초의 다른 삶이라면 살 價値를 상실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칼-막스의 이론도 어렸을적 우린 알았지. 고향을 떠나는 남원역의 유년기 시절, '한양에 가면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말고, 돈은 여기 저기 나누어 넣어야 해' 하면서, 품안을 떠나는 아들을 안타깝게 보던 모친의 얼굴. 그때부터 칼-막스는 우리곁에 서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는 금품을 요구하는 선지자로 강도의 얼굴을 하고 나를 유인했는지 모른다. 기껏해야 천원짜리 한장하고 동전 몇개였었는데.

  인간들은 왜 하루하루를 벌집 짓듯 자기들의 울타리로 담을 쌓고 있는걸까? 그래서 살아서 가는 날들은 어느 궤도에서 곡선을 긋고 있는 걸까? 나의 두뇌는 깨어 있어서 삼만리가고, 분신이 되어서 눈 처럼 흩날리고, 내 의식도 가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꽃바람은 아직 멀리 있어서 가슴에 미치진 못하고, 우리들 마음은 자꾸만 폐쇄 되어 간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백사장에 둘만의 족적을 만들기를 바라면서...

  오래된 노트를 보다가 내용이나 뜻이 산만하기 이를데 없는 원고를 봤다. 청년시절의 글이다.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고 첫 부임지인 함안 대산에서 쓴 글(1982년)인것 같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원고지에 빼곡히 적었는지 아련하게나마 짐작은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시절 젊음이 참 좋은것 같다. 생각이 너무나 자유 분방해서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면 무슨 글인지 이해하기 힘든다. 여기서 兄은 분신된 또 다른 내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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